<시작하면서> 
HR 강호의 고수들께서 칼럼 필진에 참여하셨습니다. 고전을 읽고 HR을 이야기하던 저의 역할은 여기서 끝을 맺을까 합니다. 실력자들 앞에서 보인 제 내공이 부끄럽습니다.

대신 손에 익은 이야기 하나를 꺼내 놓을까 합니다.
노동법 해설입니다. 하지만 그 해설이 친절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한다”거나 “이것이 옳다”는 당위를 말하지 않는 해설입니다. 그러기에는 제 공부가 부족합니다.

“노동법이 이것이다”라는 존재를 그대로 내놓아, 읽는 여러분들께서 각자의 입장에서 해석하실 수 있는 그런 연재가 되었으면 합니다.

어렵게 말하는 재주가 없어 최대한 쉽게 써 보겠습니다. 그래도 어려우시다면 그 역시 모두 제 탓입니다.

<1. 누가 근로자인가>

어느 재수 종합반 학원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논술 강사로 이름을 날리던 정모씨가 퇴직을 합니다. 15년 넘게 그 학원에서 근무했던 정모씨는 학원에 퇴직금 지급을 요구하나, 학원에서는 이를 거절합니다. 정모씨가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조금 불친절한 노동법” 첫 번째 이야기는 “누가 근로자인가?”입니다. 근로자는 노동법의 모든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임금이 보호됩니다. 매월 휴일과는 별도로 최소한 하루는 더 쉴 수 있습니다. 1년 이상 일하면 퇴직금도 받을 수 있습니다. 회사는 함부로 해고하지 못하고 각종 노동법적 보호 조치를 해주어야 합니다.

학원측은 이런 의무들이 부담스러울 겁니다. 그래서 사전 조치를 취합니다. 강사들에게 사업자등록을 하게 했습니다.

급여도 기본급이나 고정급 없이 시간당 강사료에 강의시간을 곱한 금액을 지급합니다. 근로자가 아니라 사업자로 만든 것입니다. 더구나 학원에서는 할 말이 더 있었습니다.

강사들은 자신이 가진 독자적인 지식으로 학생을 가르칠 뿐, 학원이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휘, 감독”을 하지 않으니 근로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학원의 주장은 94년 대법원이 정한 판례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근로자가 되기 위해서는 “종속적인 관계”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럼 “종속적인 관계”가 뭐냐? 바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휘, 감독을 받는 관계라야 된다는 것이지요.

이 사건이 일어난 2006년, 이제 대법원은 기존과는 다른 해석을 내놓습니다. “종속적인 관계”를 판단함에 있어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휘, 감독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지휘, 감독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업무수행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지휘 감독을 받는지는 해당 업무의 성격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었던 것입니다. 강사처럼 업무 수행의 상당한 재량이 있는 경우도 얼마든지 지휘 감독을 받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대법원은 기본급이나 고정급을 정하지 않고 사업자등록을 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합니다.

이 모두는 학원이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정모씨 의사와 상관없이 정했을 여지가 큰 것이라 보았습니다. 앞으로 대법원이 근로자 여부를 판단할 때는 이런 사실들은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하겠다는 것이 대법원의 설명이었습니다.

대법원은 “누가 근로자인가?”에 대해 이 사건을 계기로 지금까지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용자가 업무 내용을 정하는지, 회사규정(취업규칙)의 적용을 받는지, 업무수행과정에서 ‘상당한’ 지휘 감독을 받는지, 근무시간이나 장소 가 지정되어 있고 근로자가 이에 구속이 되는지, 받는 보수가 일한 대가인지”를 봐서 “그렇다!”라는 대답이 나오면 근로자라고 합니다. 회사에 인적으로 종속되어 있다는 거지요.

이외에도 경제적으로, “비품, 원자재나 작업도구 등을 소유하는지, 제3자를 고용해 업무를 대행하는지, 이윤 창출이나 손실 초래 등 사업주로서의 위험을 부담하는지”를 따져 이번에는 “아니다!”라는 대답이 나오면 근로자라고 합니다.

근로자라면 사용자에게 “인적”,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어야 하고 그것을 판단하기 위해서 위와 같은 질문을 한다는 것이지요.

결국 대법원은 정모씨의 손을 들어 줍니다. 학원은 정모씨에게 지난 15년 간의 퇴직금을 지급하라고 합니다.

주변에 누군가 일하고 있습니까? 그럼 이렇게 질문해 보시지요. “그는 근로자인가?”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