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소통의 시대입니다.

이름난 최고경영자들이 SNS에 글을 올리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고 많은 경영인들이 신세대식 소통법에 익숙해지려 애쓰고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관리자 평가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자문사 중 한 곳은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관리자의 승진을 엄격히 제한하기도 합니다.

이제 교육의 계절인 가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소통과 대화를 주제로 한 교육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올 가을은 여기 저기 노사관계와 대화를 주제로 한 강의에 지방을 전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교육 기획자들께서 묻습니다.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를 말입니다. 그 때마다 저는 논어의 한 구절을 옮깁니다.

己所不慾  勿施於人 (기소불욕 물시어인)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중용에도 비슷한 구절이 나옵니다.

施諸己而不願  亦勿施於人 (시저기이불원 역물시어인)

두 구절 모두 "자기 자신에게 베풀어 보아서 원치 아니하는 것은 남에게도 베풀지 말라"는 뜻입니다.

저는 대화에 있어 중요한 것은 "남이 나에게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을 남에게 먼저 하는 것"만큼 "내가 원하지 않은 것을 남에게도 행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교 때 미팅을 나간 적이 있습니다.

당시 "여자의 연애 심리" 같은 류의 책을 읽고 "실전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몇 가지 기술"을 익혔습니다. 연애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약속 장소에 3분 정도 늦게 나가 기대감을 키우라"는 조언과 "유머러스한 분위기에서 상황을 주도하라"는 목차를 읽고 농담 몇 개도 준비를 했습니다.

약속 장소에 미리 도착해 상대가 나온 걸 확인하고 정확히 3분 늦게 그 자리로 나갔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여학생은 남자가 늦게 나오는 걸 아주 무례한 행동이라 생각하던 분이었습니다. 뭔가 심상치 않은 기류를 느꼈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성공률 100%를 보장하는 "대화 매뉴얼"을 몇 번이고 반복해 읽었던 터라 그런 느낌 쯤은 과감히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농담 한 마디를 했습니다.

"제가 영어 공부를 하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런데 제가 단어 하나를 외웠는데 혹시 finger(핑거)의 반대말이 뭔지 아십니까?"

그 여학생은 공부 좀 했다고 잘난 척 하는 남자가 세상에 제일 싫었다고 합니다.  아주 싸늘한 반응으로 뭐냐고 물을 때 그런 느낌을 받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대화 매뉴얼"을 성경처럼 받들고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오므링거" (폈다의 반대 오므렸다. 핑거의 반대는 오므링거)

아버지가 보수적이시라 7시에는 집으로 가야 한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 여학생의 뒷 모습을 보고 나서야 제가 뭔가 큰 실수를 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을 남도 좋아 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상대도 꼭 그러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모두 다른 "바램"을 저는 획일화해 "매뉴얼"대로 했던 것입니다.

강의 때마다 교육생들은 현장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매뉴얼"이 없냐고 하십니다. 제가 드리는 매뉴얼은 무언가 어떻게 하는 "작위"의 매뉴얼이 아니라 절대 해서 안되는 "부작위"의 매뉴얼입니다.

대화와 소통의 시대.
달변과 다변이 가득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몇 가지 기술이 아니라 금지 목록 몇 개일지도 모르겠습니다.